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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SE 2세대와 애플의 고가 전략

맥사랑이 2020. 4. 17. 02:42

애플답지 않은 가격 아이폰 SE 2세대는 스마트폰 생태계에 교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애플 제품은 비쌉니다. 아마 애플 제품의 가격을 한 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모두 동의할 것입니다.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의 살인적인 고가 정책으로 인해 팀 쿡의 애플에 혁신은 없고 높은 가격만 있다는 비판도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까요? 아닙니다, 애플은 자사 제품의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았습니다. 아이폰을 제외하면 말이죠.

 

 2009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2009년의 가장 저렴한 맥북은 '맥북'이었습니다. 하얀색 플라스틱 바디가 매력적이어서 '흰둥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렸죠. 당시 '맥북'의 가격은 999달러였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가장 저렴한 맥북인 '맥북 에어'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놀랍게도 여전히 999달러입니다. 아이패드의 가격은 어떨까요? 2010년 아이패드 발매 당시 아이패드의 가격은 499달러부터 시작이었습니다. 2020년 현재는? 329달러부터 입니다. 아 이 가격은 보급형 라인인 '아이패드 10.2인치'의 가격이었군요. 그렇다면 기본형 라인인 '아이패드 에어'는 얼마일까요? 이 쯤되면 눈치채실 겁니다. 여전히 499달러입니다. 

 

크게 보급형, 기본형, 고급형 라인업으로 분류되는 맥들

 

 799달러라고 떡하니 쓰여있는 '아이패드 프로'는 어디다가 팔아먹은 거냐구요? 물론 아이패드의 플래그쉽 모델이 '아이패드'에서 '아이패드 프로'로 계승되었으니 499달러에서 799달러로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냐고 물어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많은 사람들이 과거 잡스의 애플 시절부터 내려오는 가격 정책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하는 오해입니다. 애플은 자사 제품의 라인업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합니다. 바로 보급형, 기본형, 고급형입니다. 간단하게 맥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데스크톱 맥은 맥미니/아이맥/아이맥 프로, 맥 프로 이렇게 세 그룹으로 나눠지고, 맥북은 (맥북)/맥북에어/맥북프로로 나누어집니다. 이러한 가격 정책이 아이패드에 적용된 것입니다. 쉽게 말해 '아이패드'라는 플래그쉽 모델이 '아이패드 프로'로 계승된 것이 아니라,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에어'라는 기본형 모델이 되고, 이전 세대의 아이패드는 '아이패드 10.2인치'라는 보급형 모델이 되고,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패드 프로'라는 고급형 라인업으로 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 제품들의 가격은 이정도로 하고, 다시 이 글의 주제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바로 아이폰입니다. 2009년 한국에 아이폰이 처음 들어올 당시 플래그쉽 모델인 '아이폰 3GS'는 199달러였습니다. 그렇다면 '아이폰 11 프로'는 얼마일까요? 무려 999달러입니다. 아 '아이폰 11 프로'는 앞서 말한 고급형 프로 라인업이니 이번에는 기본형 모델인 아이폰 11을 보겠습니다. 오, 기본형 모델임에도 699달러부터 시작합니다. 기본형 모델과 비교를 하더라도 무려 3배가 넘는 가격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어째서 다른 제품들과 달리 아이폰은 이렇게 가격이 심하게 오르게 되었을까요?

 

 이는 스마트폰 시장의 성숙 때문입니다. 더 이상 2010년대 초반과 같이 1년전 출시된 폰과 어제 출시된 폰의 성능이 극적으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신기능도 이제 더 이상 추가될 만큼 신선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특장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딱 하나 남은 것이 카메라가 되어 모든 제조사들이 디자인을 포기하면서까지 카메라 성능 향상에 기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다 보니 기존 2년에 한 번씩은 폰을 바꾸던 사람들이 약정이 다 끝나도 폰을 바꾸지 않고, 너무 비싼 최신 기종보다는 1,2년 전에 나온 합리적 가격의 구형폰을 구매하는 등 소비의 트렌드가 변화했습니다.

 

 애플은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따라 아이폰의 판매 정책을 변경했습니다. 원래 애플은 기존 아이폰은 최신 모델을 플래그쉽 모델로 삼고, 작년에 출시된 모델을 보급형 모델로 삼아 가격을 낮추어 팔았습니다. 또한 2년에 한번씩은 아이폰의 디자인을 갈아엎어서 사람들이 신제품을 산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이러한 전략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은 바로 2017년 '아이폰 X'가 출시되면서부터입니다. 원래 '아이폰 7S'를 발표할 차례였던 애플은 갑자기 '아이폰 X'라는 고급형 모델과 '아이폰 8'이라는 기본형 모델을 출시합니다. 그러면서 고급형 모델인 '아이폰 X'의 가격을 핸드폰이 아니라 노트북 급으로 올려버립니다. 디자인도 2년에 한 번씩은 크게 바뀌던 전통을 깨고 출시된 지 3년이 넘게 지난 '아이폰 X'의 디자인 틀이 '아이폰 11 프로'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아이폰 8은 2016년 발표된 아이폰 7의 디자인과 거의 같은데, 이 디자인을 아이폰 8의 폼팩터를 기반으로 한 아이폰 SE 2세대까지 4년을 가지고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략의 변화는 스마트폰 시장도 이제 PC시장 처럼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정적인 시장으로 변화한 것에 대한 애플의 빠른 판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적당한 가격과 신선한 디자인을 통해 2년에 한 번씩 새로운 제품 구매를 유도하는 것보다, 어차피 소비자들은 이제 폰을 한 번 사면 오래도록 쓰니 한 번 팔 때 비싼 가격에 팔고 새 제품의 디자인을 크게 변경하지 않음으로써 기존 제품 가치를 더 오래 유지하는 방향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결국 애플의 이러한 전략은 매우 잘 먹혀들었고 매우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스마트폰 판매 점유율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갑자기 뜬금없는 '아이폰 SE 2세대'는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애플은 이전 제품을 기본형으로 팔고 신제품을 고급형으로 파는 전략을 써 왔습니다. 그러다가 고급형과 기본형을 함께 신제품으로 발표하게 되고 부터는 '기본형'제품이 기본형 답지 않게 너무 비싸지게 되었고, 적당한 가격에 아이폰을 사용하기 원하는 층의 요구를 만족시켜줘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됩니다. 이에 따라 기존 제품들의 판매 기간이 연장되었고 결국 '아이폰 11, 11 프로' 발표 이후에도 '아이폰 Xr'은 물론 '아이폰 8'도 계속해서 팔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출시된 지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난 '아이폰 8'은 성능 문제 때문에 새 제품으로 팔기에는 사후지원이 문제가 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애플의 해결책이 바로 '아이폰 8'의 폼팩터(틀)에 새로운 내부를 적용한 '아이폰 SE 2세대'인 것입니다. (이전에 남아도는 5의 폼팩터를 활용하기 위한 보급형 모델 '아이폰 SE'의 아이디어를 한번 더 적용시킨 것이죠)

 

 '아이폰 SE 2세대'는 안드로이드 시장에 매우 큰 타격을 불러올 것입니다. 안드로이드의 플래그쉽 기종들 판매량은 매우 처참한 상황에, 보급형 모델들이 이런 저조한 판매량을 커버해주고 있었는데, 보급형 안드로이드 모델만큼 싼 아이폰이, 심지어 플래그쉽 모델과 동일한 AP를 가지고 나타났다? 아마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판매량 1~10위는 대부분 아이폰이 가져갈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략으로든 제품으로든 항상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애플을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